〈오르또따띨레 V: 균열과 씨앗〉
김희주의 〈ORTOTATTILE (오르또따띨레)〉 시리즈는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주의자들이 남긴 『미래주의 요리책』(1932)¹ 에 기록된 ‘Ortotattile (촉각 정원)’라는 레시피에서 출발한다. 파스타를 식탁에서 추방하자는 급진적 선언을 담은 이 요리책은 음식을 맛의 매개가 아닌 감각적 사건으로 재위치시켰다. 김희주는 이 레시피를 자신의 포뮬라로 재해석하며, 시각이 지배하는 미술 제도 안에서 다중 감각적 인식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문해왔다. 음식을 만지고 먹이는 행위, 입 안에서의 질감과 압력, 타인의 손이 전달하는 온도. 이 시리즈는 망막이 아닌 피부로 감각하는 예술의 조건을 묻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론(hylomorphism)은 모든 존재를 질료(hyle)와 형상(morphe)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전통적 도식에서 형상은 질료를 규정하는 능동적 원리이며, 질료는 형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기반이다. 〈ORTOTATTILE〉의 실천은 이 위계에 균열을 낸다. 김희주가 제공하는 프로토콜은 형상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것은 고정된 외형이 아니라 매번 다른 신체들이 실행함으로써 비로소 현실화되는 열린 구조다. 각 참여자의 손의 온도, 압력, 리듬, 음식의 질감 앞에서 프로토콜은 고정된 형상으로 남지 못한다. 질료는 형상을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형상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재규정한다. 이 지점에서 〈ORTOTATTILE〉는 단순한 참여 퍼포먼스의 논리를 넘어선다. 참여자의 신체가 작업을 완성한다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신체라는 질료가 작업의 존재론적 조건 자체를 매번 다르게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 실천은 관계적 실천(relational practice)의 계보 안에 놓이지만, 단순한 사회적 교류나 참여의 연출에 머물지 않는다. 〈ORTOTATTILE〉가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은 돌봄(care)의 윤리를 교환의 구조 안에 명시적으로 새겨넣기 때문이다. 먹이는 행위는 일방적 돌봄이 아니다. 먹이는 자와 먹히는 자, 심는 자와 피워내는 자 사이의 상호적 취약성이 교환의 조건이 된다. 이 취약성은 관계를 감상적으로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촉각적 리듬이 마찰하고 조율되는 과정으로서의 관계를 생성한다.
이 구조 안에서 작가의 몸은 질료형상론의 위계를 몸으로 전복하는 장소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식에서 질료는 형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기반으로 규정되지만, 여기서 작가의 몸은 씨앗을 받아 채소를 피워내는 능동적 질료로 작동한다. 형상을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형상을 스스로 생성하는 질료. 비토 아콘치의 〈Seedbed〉(1972)에서 작가는 갤러리 바닥 아래 누워 관객의 발소리를 자극 삼아 자위행위를 했다. 그 몸은 극단적 자기지시성 안에서 닫혀 있었다. 김희주의 누운 몸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 씨앗을 받아 채소를 내보내는 이 몸은 타인을 향해 열려 있고,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 반투명한 TPU 막은 완전한 가시성도 완전한 은폐도 아닌 중간 지대를 만들고, 작가는 그 막 안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질료적 존재로 머문다.
이전 시리즈 〈오르또따띨레 IV: (불)투명한 케이터링〉(2025)에서 처음 등장한 TPU 막은 뮤지엄 노동의 (비)가시성을 은유하는 장치였다. 관객이 막의 구멍을 찾아 고개를 내밀고 음식을 집는 행위 자체가 케이터러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가시화하는 퍼포먼스였다. 이번 〈오르또따띨레 V: 균열과 씨앗〉에서 그 막은 다른 물질적 조건으로 전환된다. 구멍은 제도적 은폐의 은유가 아니라, 씨앗이 통과하는 실제적 틈새가 된다. 방들을 연결하는 가정집 거실 공간, TPU에 사전에 뚫린 구멍들, 그 구멍을 통해 오가는 콩과 채소가 넘나드는 균열은 이 작업에서 수사가 아니라 물질적 조건이다.
작업이 펼쳐지는 hermit는 타이베이 시티에 위치한 일반 아파트의 거실을 개조한 공간이다. hermit은 공간 디렉터 부부가 한 마리의 고양이, 그리고 한 살과 다섯 살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실제 가정집의 일부다. 뮤지엄도, 화이트큐브도 아닌 이 공간은 일상의 돌봄이 이미 실천되고 있는 장소다. 제도 바깥의 가장 친밀한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단순한 장소의 변화가 아니다. 돌봄과 신뢰를 탐구해온 〈ORTOTATTILE〉 시리즈가 그 개념을 가장 문자 그대로 실천하는 공간으로 hermit을 선택한 것이다.
퍼포먼스가 발생하는 2026년 5월 23일은 대만의 매화 장마(梅雨) 기간이자 매실 수확기다. 작가는 한국의 전통 음료 수정과를 활용한 미스트를 분사하여 외부의 비를 공간 내부로 복제한다. 관객 참여자는 그 계절의 논리를 따라 매실을 수확하듯 TPU 막 너머의 채소를 거둔다. 외부의 장마와 내부의 미스트가 교차하며 아파트 거실 갤러리는 촉각 정원의 기능을 수행한다. 대만의 여러 비건 식재료와 한국에서 수급한 식재료는 한 테이블 위에서 두 지점의 물질적 결합을 가시화한다. 장마와 미스트, 씨앗과 채소, 두 지역의 식재료가 교차하는 이 공간에서 〈오르또따띨레 V: 균열과 씨앗〉은 촉각 정원을 개념이 아닌 물질적 사건으로 완성한다.
(글 김희주)
ORTOTATTILE V: Fissures and Seeds,
2026.
hermit, Taipei City, Taiwan